Archive for Jean-Luc Godard

Je suis très belle!

Posted in cinema, coolest _, inspirations with tags , , , , , , , on 17/05/2011 by e.jacqueline kim

[youtube\http://youtu.be/B6zk9SnepWw] elle est très bel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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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de à Part

Posted in cinema, coolest _, inspirations with tags , , , , , , , on 17/05/2011 by e.jacqueline kim

magical.

안나 카리나에 대해 알고 싶은 두 세가지 것들

Posted in cinema, coolest _, inspirations with tags , , , , , on 16/05/2011 by e.jacqueline kim

안나 카리나에 대해 알고 싶은 두 세가지 것들 

안나 카리나(Anna Karina) 부산 국제영화제 마스터클래스 中


프랑스의 비평가 세르주 다네는 배우에 관하여 이런 말을 남겼다. “배우의 육체는 영화에 스며들고, 영화의 역사가 된다.” 프랑스 누벨바그 시대에 등장한 배우들은 정말로 그랬던 것 같다. 1950년대 말에 시작된 프랑스 누벨바그 (Nouvelle Vague)는 영어로 ‘New Wave’, 즉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이다. 짧은 촬영 기간, 젊은 배우를 통한 동시대 젊은이들의 이야기, 스튜디오가 아니라 자연광을 이용한 로케이션 촬영, 적은 예산과 소규모 인원의 제작 방식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20세기의 영화를 젊은이들의 문화로 만들어 낸 새로운 흐름이었다. 흔히 누벨바그의 신화는 「카이에 뒤 시네마」 출신의 평론가들이었던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에릭 로메르 등이 감독으로 데뷔하면서 만들어 낸 지적인 영화의 흐름으로 받아들여 왔다. 그런데 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오늘날까지 확산시킨 것은 감독의 지성뿐만 아니라 배우들이 만들어 낸 물신화된 육체의 힘이었다. 프랑수으 트뤼포의 <쥴 앤 짐>이나 장 뤽 고다르의 <국외자들>에서 삼각관계에 얽힌 세 명의 주인공이 질주하는 장면은 영원한 아이콘이 되었다. 배우들이 아니었다면 영화의 아이콘이 이처럼 오랫동안 기억 될 수 있었을까. 당대 최고의 아이돌이였던 장 폴 벨몽도, 프랑수아 트뤼포의 페르소나로 잘 알려진 장 피에르 레오, 누벨바그의 여신 잔느 모로 그리고 고다르의 동반자였던 안나 카리나 등은 누벨바그의 감독들과 함께 새로운 영화를 만든 장본인들이다. 이들의 육체는 스크린 속에 깊숙이 각인되어 누벨바그라는 서명이 우뚝 서도록 만들었다.

그 중 장 뤽 고다르가 사랑했던 여인이며 1968년에 일어난 68혁명 이전의 고다르와 함께 했던 안나 카리나는 큰 눈을 지닌 패션 아이콘이나 샴푸의 요정으로 출발한, 가장 어울리는 누벨바그의 배우였다. 더구나 그녀는 고다르와 함께 영화를 통해 누구보다 매력적인 60년대의 초상이 되었다.  두 사람이 함께 촬영한 <국외자들>(1964)에는 안나 카리나가 춤추는 유명한 장면이 등장한다 고다르의 초기작은 헐리우드 뮤지컬에 대한 인용과 패러디가 시도되는 것을 종종 볼수가 있는데, <국외자들>에서 안나 카리나가 특유의 발랄함을 선보이면서 춤을 추는 장면은 특히 유명하다. 이 장면의 강렬한 인상은 후대 감독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미국의 독립영화 감독인 할 하틀리는 <심플맨>을 통해 이 장면을 고스란히 인용한다. 소닉 유스의 ‘cool thing’이라는 음악과 함께 주인공들이 춤을 추는 장면은 고다르의 영화보다는 더 암울한 기운이 감돌지만 강렬한 인상을 새기는 장면임에 분명하다.

더 유명한 예로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에서 여주인공 우마 서먼이 춤을 추는 장면을 들 수 있는데, 이 장면이 바로 <국외자들>을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제작사 이름을 프랑스 원제를 빌려와 ‘band à part’라고 정할 정도였다. 안나 카리나의 정열적인 몸짓이 아니었다면, 고다르의 탁월한 지성만으로 훗날의 반복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파리의 소녀

흔히 안나 카리나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여겨지지만 그녀는 1940년 9월 22일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출생하였다. 18세에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까지 불어가 서툰, 미술과 춤을 좋아하는 북유럽의 소녀였다. 카리나가 처음으로 영화를 경험한 것은 덴마크에서 11분짜리 흑백단편 <구두를 신은 소녀 Pigen og skoene>(1959)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부터이다. 사춘기 시절의 카리나는 가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가 하면, 열일곱 살때까지 엑스트라 일을 하면서 보다 넓은 세상을 꿈꾸었다. 그녀가 파리행을 결심한 것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18세 때의 일이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홀로 지내야 했던 불우한 환경은 다른 곳으로 탈출하고 싶은 그녀의 욕망을 부추겼다. 파리로 먼저 건너간 친구들과의 연락도 커다란 유혹이었다. 그들은 파리로 건너 오기만 하면 많은 것을 도와주겠노라고 말했다. 카리나는 파리로 건너간다. 그러나 파리에 도착한 그녀는 여전히 혼자 였다. 돕겠다던 친구들도 그녀를 외면했다. 카리나는 용기를 내어 한 성당을 찾아갔다가 도움을 받게 된다.

그녀는 어른들의 도움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카리나가 처음으로 만난 것은 전문 사진그룹이었다. 메이크업 담당도 있고, 의상담당도 있었다. 이들과 함께 길거리에서 패션쇼를 펼쳤다. 아직 프로가 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돈을 받을 수는 없었지만 음식을 사먹을 돈을 벌 수 있었고 형편은 점점 더 나아지기 시작했다. 안나 카리나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게 된것은 코코 샤넬과 피에르 가르뎅의 눈에 띄면서이다. 카리나는 「엘르」에 표지모델로 발탁되면서 본격적인 모델 활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를 대중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텔레비전의 비누 광고에 출연하게 된다. 장 뤽 고다르를 만나게 된것이 이 비누 광고 덕분이다. 당시 프랑스의 영화 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 글을 기고하던 평론가, 고다르는 장편 데뷔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 광고 몬델인 안나 카리나가 들어왔다. 고다르는 전보로 <네 멋대로 해라>의 단역을 제의했다. “작은 역할이긴 한데 옷을 벗는 여자를 연기해야 해.” 안나 카리나는 그에게 답을 보냈다. “옷을 벗고 싶지는 않은데요.” <네 멋대로 해라>의 출연 제의를 받았을 당시 안나 카리나는 여전히 불어에 익숙하지 않았다. 장 뤽 고다르는 어느 인터뷰에서 외국인이었던 안나 카리나의 불어 발음이 매력적이었다고 회고 하였다. 외국인이 불어를 발음 할 때 일어나는 미묘한 뉘앙스가 자신을 자극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나에게는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이었고 불안한 마음과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힘겨운 날들을 보내던 시절이다.

고다르와 영화를 살다

3개월이 지난 후 고다르 감독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다시 왔다.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의 성공으로 고다르는 유명해져 있었다. 그러나 안나는 장 뤽 고다르의 존재를 새까많게 잊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고다르가 누구인지를 묻자 커다란 검은색 안경을 끼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시대의 아이콘이었고, 새로운 영화를 이끌 선두주자로 인식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난 자리에서 고다르는 자신이 이번에 만들 영화가 바로 정치영화라고 설명했다. 그녀에게는 낯선 말이었다.

” 당시 18살밖에 되지 않았었는데 어떻게 정치적인 영화를 하지라고 생각했다. 고다르는 시키는 것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솔직히 혼란스러웠다. 옷을 벗는 영화라면 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고다르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고 했다. 고다르는 내일 다시 와서 계약을 하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미성년자라서 계약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오라고 했다. 어머니는 파리에 살지 않고 사이가 좋지 않다고 말했더니 전화통화로 바꿔달라고 말했다. 당시 일이 뚜렷하게 생각난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프랑스영화를 찍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너, 미쳤냐”고 말했다. 다시 전화를 걸어 어머니에게 파리로 오실 수 있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비행기는 타기도 싫고, 비행기가 겁이 난다고 했다. 정말 중 요한 일이라고 간청을 드렸더니 승낙을 했다. 계약은 그렇게 성사되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역사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만남으로 기록된다. 영화이론가인 데이비드 톰슨은 장 뤽 고다르가 여배우 안나 카리나와 함께 작업했던 1960년대 초중반을 가리켜 ‘고다르의 영화에 대한 사랑이 최고의 정점에 달했던 활기 넘치는 시기’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연인에 대한 사랑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 였을 것이다. 고다르의 말대로 <작은 병정>은 정치영화 였지만 안나 카리나와 함께 작업했던 1960년대 초중반을 가리켜 ‘고다르의 영화에 대한 사랑이 최고의 정점에 달했던 활기 넘치는 시기’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연인에 대한 사랑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 였을 것이다. 고다르의 말대로 <작은 병정>은 정치영화였지만 안나 카리나와 사랑에 빠지게 된 영화이기도 했다. 카리나를 향한 구애는 영화의 장면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가 있다. 영화 초반주에는 위그라는 인물이 주인공 브뤼노 (미셸 쉬보르)에게 베로니카(안나 카리나)를 소개하면서 5분안에 사랑에 빠질 거라며 50달러 내기를 거는 장면이 있다. 세 사람은 시시콜콜한 잡담을 주고받는다. 그러던 중 브뤼노는 베로니카에게 머리를 흔들어 보라고 주문한다. 여성의 매력을 드러내는 장면은 정치영화라는 테제에는 전혀 어울리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지만 영화 속에서 브뤼노는 위기의 예언처럼 베로니카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머리를 흔들어 보이자 브뤼노는 위그에게 50달러를 건네주고, 베로니카와 사랑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것은 코다르와 카리나 사이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병장>은 스위스에서 촬영 되었다. 생각보다 오랜 기간 촬영이 진행되면서 고다르와 카리나 사이에는 특별한 눈빛이 오고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먼저 다가가지는 않았다. 눈빛만 주고받았을 뿐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깨어진 것은 한 파티장에서 였다. 촬영 기간에 스위스 로잔에서 파티가 있었다. 그들이 앉은 테이블 한쪽에는 장 뤽 고다르와 그의 친구들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카리나와 당시 화가였던 카리나의 남자 친구가 함께 있었다. 카리나는 앉아 있던 테이블 밑에서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손길을 느꼈다. 그것은 고다르의 손길이었다. 안나 카리나는 장 뤽 고다르가 발굴하고 훈련시킨 대표적인 배우였다. 또한 카메라를 통해 매혹된 유일한 현실의 여성이었다. 한편 장 뤽 고다르는 오랫동안 브리짓 바르도와의 영화장업을 희망하였다. 그의 희망은 <경멸>(1963)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녀의 매력조차도 카리나를 향한 열정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고다르는 카리나와의 결혼을 결정한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스위스에서 촬영한 <작은 병정>은 검열문제로 인해 1963년에서야 개봉할 수가 있었다.

 그 사이 안나 카리나는 고다르와 <여자는 여자다>(1961)를 촬영한다. 영화의 촬영이 끝난 후 두 사람은 1961년 3월3일에 결혼식을 올린다. <여자는 여자다>는 안나 카리나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미국의 영화평론가 조나단 로젠봄은 이 작품을 두고 ‘고다르가 카리나를 향해 지녔던 사적인 다큐멘터리’라고 논평했다. MGM의 뮤지컬 영화와 특히 스탠리 도넌의 뮤지컬에 영향을 받은 <여자는 여자다>에서 카리나는 스트립걸을 연기하면서 자신의 매력을 장면마다 과감하게 발휘한다. 그것은 분명 시선을 붙잡는 것이었다. 이 작품은 카리나에게 베를린 국제 영화제 여우 주연상을 안겨 주었고, 그녀를 국제적 스타로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고다르와의 영화 작업은 카리나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느낌이었다. 10년의 세월이 차이 나지만 그들은 영화 동반자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필모그래피를 쌓아 나갔다.

두 사람이 만든 영화 중 오늘날까지 자주 회자되는 영화 중 하나가 1962년에 만든 <비브르 사비>이다. 안나 카리나는 나나라는 주인공 역할을 맡고 있다. 영화 속 나나는 궁핍한 생활을 영위하다가 결국 윤락여성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이제 막 이십대에 접어 든 나이임을 감안하자면 창녀라는 역할은 굉장히 강한 캐릭터였다. <비브르 사비>의 촬영기간은 3주밖에 안됐다. 촬영 기간이 굉장히 짧았고, 대본도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눈빛으로 강하 교감을 하였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게 장 뤽 고다르의 스타일이다. ‘이렇게 해라’라고 강력하게 주문을 할 때 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주문 없이도 통했다.”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장면은 극장에 간 나나가 칼 드레이어 감독의 <잔다르크의 열정>을 보는 장면이다. 흑백의 무성영화를 보던 나나는 잔다르크 역을 맡은 팔코네티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면서 똑같이 눈물을 흘린다. 쇼트와 리버스 쇼트로 편집된 이 장면은 무성영화의 여신인 팔코네티와 누벨바그의 여신인 카리나의 대꾸 장면이기도 하다. 그녀들은 시대에 희생될 수밖에 없는 여인의 눈물을 대변하는 동시에 영화사상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를 지닌 배우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클로즈업된 두 쇼트를 이어 붙임으로써 미학적 충격과 아름다운 여배우들의 물신화된 이미지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영화의 동지인 두 사람의 일생이 행복하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고다르와 카리나의 결혼 생활은 1964년에 마무리 된다. 현장에서는 함께 하였지만 그들의 사생활은 이별의 연속이었다.

“장 뤽 고다르는 자신만의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 할 수 잇다. 예를들어 “안나, 나 담배 좀 사올게.”하고 3주동안 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 때가 스무 살이었다. 당시 자동응답기나 휴대폰 같은 것은 세상에 없었다. 전화가 오면 반드시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메시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화기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기도 했다. 어느 날 그가 돌아오면 잉그리드 버그만과 뉴욕에 가기도 하고 로셀리니를 만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 때마다 선물을 들고 왔는데 아마 변명거리 였을 것이다. 늘 정해진 것이 없어 보이는 그는 같이 살기 힘든 사람이었다. 어느 날 프랑스의 해안에 가보겠냐고 해서 가겠다고 했더니 밤 12시에 떠나자고 했다. 당시 프랑스에는 고속도로가 없었다. 포드의 오픈카를 타고 국도를 따라갔다. 노래를 부르며 굉장히 즐겁게 여행이 시작되었다. 2주동안 굉장히 즐겁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파리로부터 200킬로미터 정도 왔을 때 고다르는 “내가 뭘 까먹은 게 있어. 파리에서 할 게 너무 많아.” 라며 다시 돌아가려고 했다. 트뤼포도 만나야 한다며 동의를 구했고, 하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 50킬로미터 쯤 돌아왔을 때였다. 고다르가 시무룩해진 나를 보고 정말 해안으로 가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나는 정말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고다르는 즉시 유턴을 하여 해안으로 향했다. 그런데 또 다시 고다르의 변덕이 시작되었다. “트뤼포도 만나야 하고, 기자도 만나야 하고, 나는 할 일이 너무 많아.”라며 또다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너무 화가나서 차에서 내려버렸다. 한밤중의 일이었다. 고다르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안나의 이미지 

이혼을 한 후에도 두 사람의 작업은 지속되엇다. <국외자들>(1964), <알파빌>(1965), <미치광이 삐에로>(1965), <아메리카의 퇴조>(1966)로 이어지는 작업은 1967년에 만든 매춘에 관한 단편 모음인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에까지 이어진다. 상당수의 영화사에서는 <아메리카의 퇴조>를 이들의 마지막 작품으로 기록하지만 그것은 장편영화에 국한되는 이야기다. 그들이 함께 한 마지막 영화에서 카리나는 고다르의 영화에서 자주 연기했던 ‘오래된 직업’인 창녀 역할을 다시 한다.

고다르 영화의 여주인공으로서 안나 카리나의 연기가 매력적인 것임은 분명하지만 종종 페미니스트 평론가들은 고다르 초기작의 여성상이 불온하거나 도발적인 것 자체에 그친다는 지적을 하고는 했다. 고다르의 초기작들은 장르적으로는 범죄영화에 해당되었으며, 여성 섹슈얼리티의 불가사의함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것은 헐리우드 장르를 해체하는 고다르 영화의 스타일 속에 내재된 또 다른 남성중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들은 대부분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남자들이다. <국외자들>은 사랑하는 여자인 안나 카리나를 두고 그녀를 감동시키기 위해 말도 되지 않는 범죄를 저지르는 두 청년의 이야기를 다룬다. <알파빌>은 인간의 사랑이라는 고전적인 주제와 새로운 과학 기술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 미래 사회의 여성인 카리나는 남성의 인도에 따라 사랑이라는 것을 새롭게 배우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물론 이들 영화에서 한결같이 비판의식은 강조되었다. <알파빌>은 SF영화의 관습을 빌린 작품이기는 하지만 파리 중산층에 대한 비판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다양한 독해가 가능하다. <국외자들>은 기존의 남녀 질서를 해체하는 도발적인 선언들로 가득 차 있다. 이 모든 것은 고다르의 머리가 만들어 낸 새로운 영화의 질서엿다. 무엇보다 카리나는 미리 대본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머릿속에 담아둔 채 배우들과 더불어 즉흥적인 연기를 선호하는 고다르의 방식에 대해 신뢰감을 지녔다. 이러한 방식은 두 사람의 결혼 인생보다 영화 인생을 조금 더 이어가게 한 끈이 되어 주었다.

“사람들은 우리가 연기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카메라 앞에 서면 연기를 해야만 한다. 작업하는 동안 대본이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모든 것은 고다르의 머릿속에 있었고, 그는 수많은 리허설을 반복하면서 배우들이 캐릭터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리허설을 하는 동안 우리는 대사들을 몸으로 느꼈다. 그것은 아주 멋진 일이었다.”

이 시기에 만든 가장 중요한 작품은 <미치광이 삐에로>라고 할 수 있다. 대도시 파리를 탈출하여 프랑스 남부에서 도망자 생활을 하는 어느 연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장 폴 벨몽도와 안나 카리나의 연기는 누벨바그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기에 충분했다. 고다르는 매우 빠른 속도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것은 고다르와 친구들의 공동작업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이전의 캐릭터와는 구별되는 요소가 엿보인다. 카리나는 윤락여성이라든가 스트립걸과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였지만 <미치광이 삐에로>의 안나 카리나는 남성의 사랑을 이용하는 팜므 파탈 이미지를 선보인다. 이전 역할에서는 다분히 백치적인 이미지, 예쁘기만 한 소녀의 이미지가 강했다고 한다면 이 영화는 기존에는 볼 수 없는 느낌을 전한다. 그것은 나쁜 여자의 이미지, 영악해진 여자의 이미지이다. 장 폴 벨몽도의 절규는 사랑의 배신에 몸을 떠는 절규이기도 한 것이다.

장 뤽 고다르 이후

 카리나는 장 뤽 고다르 이외에도 많은 감독들과 작업을 했다. 자크 리베트, 에릭 로메르, 아네스 바르다와 같은 프랑스 감독뿐만 아니라 폴컨 쉴렌도르프, 루키노 비스콘티,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와 같은 다른 유럽 감독이나 조지 쿠거등의 미국 감독과도 작업을 했다. 그녀는 자신이 출연하였던 영화속의 유명한 장면들을 직접 노래한 음반을 내놓기도 했다.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과 다양한 공연을 통해서 안나 카리나는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다. 서른두 살에는 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 1973년 작 <리빙 투게더>는 누벨바그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친구들(지인들)의 도움을 얻어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였다. 스튜디오에서 친한 카메라 감독과 작업을 하였고, 카리나의 아파트에서 대부분의 장면을 촬영했다.

감독을 맡았던 카리나는 스테프들을 위해 직접 요리를 하기도 했다. <리빙 투게더>는 3주 반 정도의 뉴욕 촬영을 포함하여 바쁜 일정을 마쳤다. 이 작품이 칸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선정되면서 감독으로서의 영예를 안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감독이 된다는 것은 힘든 경험이었다. 당시에는 배우가 제작을 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한 시대를 풍미한 여배우가 제작을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여성에 대한 선입견과 열악한 제작 환경은 안나 카리나를 빚더미에 오르게 하였다.

하지만 카리나의 작업은 계속된다. 그녀가 감독뿐만 아니라 시나리오, 배우 까지 맡은 <빅토리아>는 누벨바그의 영광을 지나 살아 있는 그녀의 현재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영화이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빅토리아’라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롤리타스’라는 듀오로 활동 중인 스타니슬라스와 지미가 캐나다 퀘벡에서 빅토리아라는 여성을 만나는 것이 시작이다. 빅토리아는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 실어증과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 루이라는 흑인을 양아들 삼아 살고 있는 미지의 연인이다. 그녀는 롤리타스를 후원하기로 작정하고, 그들과 함께 캐나다 공연 투어에 나선다. 그것은 한때 영화 속 예선이었지만 어느덧 세월의 무게를 입고 스스로가 무대의 주인공이 아닐지라도 젊은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돌보는 위치에 서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는 세월의 간극을 넘어서는 ‘단절’이 필요할것이다.

(중략) 안나 카리나의 말처럼, 그녀의 영화 만들기는 상당 부분 고다르와 함께 한 시절에 빚지고 있다. 고다르의 영화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멀리 나가면서 20세기의 영화사를 새롭게 작성하였다면, 카리나는 고다르 이후에 아주 멀리 나가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지닌 재능을 활용하면서 또 다른 가능성을 꿈꾸었다. 카리나 스스로는 “고다르와 영화를 찍으면서 굉장히 어려운 순간들도 있었고, 카메라가 있기 때문에 리허설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고다르는 종종 원칙을 어겼다. 그는 특별했다. 내게 많은 것을 알려 주었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고다르에게서 배웠고, 그는 나의 인생의 선배였고,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을 액면 그대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누벨바그의 여신이 었던 그 시절, 안나 카리나는 이미 고다르의 뮤즈 였고 영감이었다. 이미 오래전 고다르 앞에 있는 존재가 바로 안나 카리나 였다.

장 뤽 고다르의 최근작 중 하나이자 그의 영화 인생을 집대성한 <영화의 역사>에는 마네의 그림 안에 안나 카리나의 얼굴을 쓸쩍 기입하는 고다르의 편집 장면을 선보이고 있다. 인상주의 회화를 통해 영화가 태동하였듯이, 고다르는 인상주의 화가의 화면 안에 안나 카리나의 얼굴을 집어 넣으면서 자신의 영화가 태동했다고 고백하는 대목이 아니었을까.

어느덧 세월이 흘러 지금 생기는 변화는 이제 카리나가 고다르를 뮤즈 삼아 나아가고 있다고 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물론, 그녀의 작품은 고다르처럼 유명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벨바그의 진정한 영향력이란 서로의 관계와 호읍안에서 누릴 수 있었던 풍성한 이미지의 역사였다. 그것을 누벨바그의 여신인 안나 카리나가 몸소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이채로운 것이다. 안나 카리나는 그로부터 배운 것을, 몸으로 부딪히면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나는 카메라로 또 다른 인생을 실천하는 우리 시대의 영화인이자 영원한 누벨바그의 현재이다.

출처 : <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 (PIFF) 마스터 클래스 : 안나 카리나 / 저자 : 이상용 >中에서.

Meeting With Woody Allen by Jean-Luc Godard 1986

Posted in cinema with tags , on 10/02/2011 by e.jacqueline kim